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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ceticism” Thar Desert, India

"고행" 인도 타르 사막  / 다발 킴 Dabal Kim

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는 2006년 미국 유타주 사막과 2009년 몽골 고비사막에서 노마딕예술프로젝트로 활성화되었고, 향후 2024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사막의 환경 속으로 예술가들이 기행하며 예술 활동을 펼치는 기획이다. 본 프로젝트의 예술 총감독 성동훈작가는 2000년도 무렵 인도에서 작품설치를 끝낸 후 우연히 인도 자이푸르 사막지대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사막 여정은 근본적인 물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이곳에 와서 작업을 한다면 어떤 작업들이 펼쳐질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이후 2005년에 기획을 진행하였고, 그 다음해에 첫 회의 장을 열게 되었다.

“기름과 전기가 없는 척박한 곳에서 현대미술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대미술의 물질적 생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법적 프로세스를 통하여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각기 다른 장르(조각, 설치, 회화, 사진, 비디오, 행위미술, 음악, 문학)로 표출되는 과정과 결과물로 의미 부여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 결과가 창출되며, 1회와 2회의 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를 묶어서 엮어낸, [유목민이 된 예술가들]책 발간이 되었다. 프로젝트로써 회를 거듭하면서 사막에서 행해지는 본 사업은 예술의 그 본질과 의의를 예술가의 도전과 행함으로 그 결과는 무한대로 창출된다.

 

이번 세 번째로 진행된 곳은 인도 라자스탄 서쪽의 타르사막으로 죠다쁘르(Jodhpor)와 자이살마르(Jaisalmer)로 펼쳐진 길고도 긴 사막, 프로젝트에 참여한 6인의 작가들은 자이푸르(Jaipur)에서부터 비카네르(Bikaner)까지 7시간 이동하여 인도의 타르사막에 도착하였다. 길고도 긴 사막과 사막을 연결해 주는 도시는 오아시스처럼 오래 전 인도인들도 그렇게 긴 시간의 삶을 이어 왔으리라 짐작이 된다. 인도의 아침은 짜이(Chei)차로 시작된다. 도시에서는 이른 아침에 짜이 차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메밀묵 찹쌀떡’의 추억의 외침이 있었던 것과 같다. 사막에 놓인 작가들도 이른 아침에 모래가 섞여 있는 짜이티를 접하게 되는데, 짜이 티와 로티(빵), 달(Dhal:커리를 넣은 콩), 짜빠티 종류의 채식식사를 프로젝트 기간 동안 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음식과 사막낙타 투어는 기획자 성동훈작가와 인도 작가, 친탄 우파드야이Chintan Upadhyay, 시스템 매니저)가 미리 섭외하여 준비하였고, 야외에서 요리한 음식과 인도스타일의 텐트에서 숙식을 하며, 낙타를 타고 환경이 각각 다른 지역에서 작업을 진행하였다. 12월 사막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낯에는 뜨겁게 달궈졌다가 해가 지면 기온이 급 하강하여 아침이면 텐트 안에 옷이 젖을 정도의 이슬이 맺힌다. 일정이 지나감에 따라 그 날씨의 변화마저도 일상이 돼버린다. 작가들의 작업은 자연의 스킨을 그대로 터치하거나, 그 안에서 자연의 물질을 이동하여 다시 설치하고, 우연적인 발견과 컬렉팅이 이루어짐으로 무척 노동적이다. 무단한 발견과 기록, 노동과 흔적, 고독한 물음과 생각..., 답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노련한 발걸음과 손놀림으로 늘 거닐던 사고의 언덕을 거닌다. 이곳은 단시 사막이라는 황량하고, 정적이 흐르는 깊은 하늘이 있을 뿐, 작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을 한다. 작가들의 작업은 한 장소를 옮기기 전에 몇 점씩 시작되고 기록으로 남겨진다. 세 차례의 사막에서 작가들을 만나보지만, 모든 작가들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라는 말인가?’의 물음에서 출발하여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는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 왔다’라고 답한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이란 무엇 이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작은 작업들의 결과물 이상의 사고의 언덕을 짊어 졌던 그 순간, 기록으로도 담기 어려운 감성이상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디렉터, 성동훈작가의 작업은 자연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렌드마크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무의 그림자는 시계 바늘처럼 이동한다. 오후 2시를 겨냥한 나무의 그림자를 대지위에 드로잉 한 후, 대략50cm의 깊이로 땅을 파고, 그 안에 주변에서 채집된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담아 2시의 그림자를 대지에 깊이 새겨놓았다. 나무라는 하나의 객체, 그 존재의 시간을 통해 또 다른 성찰의 자아를 어두운 그림자로 표현되는 현실의 기록이라 하겠다. 그 곳에 자연의 오브제를 채워 놓음으로써 비워있음이 아닌, 다시 채워지는 작가의 행위로 인해, 재구성되고 기록된 것이다. 채워짐은 다시 어두워진 밤에 마치 뜨거웠던 오후 2시의 태양 빛을 재구성하듯이 태워지고 다시 검은 재로 남는다. 불타고 남은 오후 2시의 그림자는 그 순간을 멈춰 대지와 하늘의 변화에도 그 순간의 기록이며 불멸하는 영감의 투영이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기획큐레이터, 다발킴작가는 2009년 몽골 고비사막에서부터 진행해 오던 동물 뼈를 채집하여 개인컬렉션이라는 작업프로세스를 이번 인도 타르사막에서도 연장선의 작업 콘셉트로 선 보였다. 인도의 소를 숭배하는 종교적 기원과 소와 사람이 함께 삶을 영위하는 인도문화를 바라본 작가의 제스처, 즉 예술행위라고 보여 진다. 고대부터 아시아대륙에서 숭배된 신성한 동물로 힌두교에서 뱀(코브라)은 다산 및 안녕을 암소는 다산과 양육을 상징한다. 작가는 사막 한 지역에서 죽은 수만 마리의 소들이 던져져 있는 매립장의 관경을 직면한 작가의 시각적 충돌, 도시 내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소들이 문명의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소’ 주체를 향한 숭고한 제사를 진행하였다. 작가는 설치된 작품 앞에서 영혼 숭배(애니미즘)의 자세를 취했다. 아직 표피가 붙어 있는 소머리, 시간이 흘러 건조된 소뼈들을 채집하여 제사 음식으로 차려 놓은 것은 ‘소를 향한, 혹은 소를 바치는’, 아이러니의 표출이였다. 작가는 제를 마치고, 땅을 파고 뼈들을 묻어 줌으로서 모든 행위를 마쳤다.

아니쉬 아하울리아(Anish Ahluwalia)는 개념적인 작업을 사진과 영상매체를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인도 작가이다. 그는 라자스탄 주변의 사막 중에서 특별히 비카네르(Bikaner)사막에서 한 개인의 성향, 자연, 인식체계 사이의 연결된 시간과 변화를 탐구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간, 공간, 정도에서 중력의 힘(자연을 통해 인식되어지는 것들)에 의해 잠겨버리게 되는 인식, 그 현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쉬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은유적이며 감각적인 설정 내에서 사막이라는 환경에 서 있는 작가 자신을 설정하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막강하게 펼쳐지고 있는 대지의 평면에 비하면 그 틀에 갇혀 있게 되는 구덩이는 너무도 협소한 공간임에도 그 객체는 자연 속으로 흡입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수면 위로 올라서는 반복성, 인식의 틀 안에 놓인 객체와 틀 밖으로 연장되는 자연의 연결성이 작가의 치밀한 설정으로 포착되었으리라 가늠해 본다.

조각가 이재효작가의 작업은 자연과 터치하고 호흡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동안 거닐고, 사고의 언덕위에서 골몰하는 모습들이 자주 포착 되었다. 모래, 나무, 돌 등 사막에서 보여지는 느껴보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여실히 그의 흔적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고 모아지기도 한다.

마니쉬 샤르마(Manish Sharma)는 젊은 인도 작가로 자이푸르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도 자연과 호흡하고 자연의 오브제를 적극 활용하였다. 사막이라는 환경에 놓인 작가들은 최소한의 도구로 작업을 진행해야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며, 극한의 환경을 경험하며, 짧은 시간의 경로에서 순발력 있는 작업들이 생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막중한 노동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체력과 인내력을 발산하며 표출되는 에너지는 작품으로 승화된다. 의도와 개념이 묻어지고, 자연의 색채와 형상이 함께 하모니를 이룬다. 다큐멘터리 사진와 영상이 그것들을 정확히 담아낸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친탄 우파드야이(Chintan Upadhyay)는 이번 사막프로젝트에서 현지 시스템매니저로서 디렉터와 프로젝트 진행을 도왔다. 그의 개념적인 작업은 ‘모래로 집을 짓는다.’에서 출발했다. 작업스케치와 구도를 면밀히 구성한 후 모래를 쌓아 올리는 시도를 여러 차례하며 건축의 행위를 비디오로 남겼다. 인식과 현상을 작가의 행위로 추측하자면, 니체는 인식 가능하게 만드는 의지가 활동하는 인식을 해석이라고 부른다. ‘집(House)', 즉 작가가 인식하는 집을 강력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행함과 그것이 지속해서 무너지는 것과의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그의 인식과 활동하는 인식, 즉 작가적 해석이라 여겨진다. 불모의 땅, 황량한 대지, 사막이라는 환경은 작가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물음을 자아내게 하며, 그 물음에 답을 내리기 보다는 그 인식과 의지를 설명이 아닌 작가의 해석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사막예술프로젝트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사막예술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사막이라는 환경설정 속에서 작가들이 유목적 예술 생산 활동을 일정 기간 동안 한계점을 극복하고, 과정 속에서의 경험, 실험을 통해, 예술이란 과연 무엇이며, 일괄적인 작가적 행위에서 탈피하고 원초적 예술의 관점과 도구, 기법의 전환을 작가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 정신에 대한 회복과 전환으로 다시금 노력해 보겠다는 다짐이 아니가 한다. 이것이 당장 극대화되는 결과로 보기보다는 자연과의 교감, 불편함과 편리함, 욕구와 욕망 사이에서 무단히 행해지는 경험들이 오랜 흔적처럼 작가들의 의식 속에 잠긴다.